13. 자기최면에 빠진 구조기술자
얼마 전 지인(知人)의 소개로 원격영상 진로멘토링에 멘토(Mentor)로 참여하게 되었다. 교육부가 주최하는 농산어촌지역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문직업인의 멘토링(Mentoring)을 통하여 농산어촌의 진로체험여건을 개선시킨다는 좋은 취지에 선뜻 참여하게 되었다.
스튜디오(Studio) 내 구비된 화상시스템을 활용하여 학생들과 온라인 화상멘토링을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방식으로 진행하였는데, 내용은 ‘건축구조설계기술자’의 직업소개, 직무내용, 나의 직업선택계기 및 학창시절, 필요역량, 미래전망 등이었다.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나의 학창시절과 구조기술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회상(回想)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기서 나의 ‘건축구조기술자’로의 직업선택 계기 및 학창시절에 대한 소개를 통하여 직업선택의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오랜만에 주저리주저리 글을 써내려본다.
내가 대학교를 들어갈 때 건축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어릴 적 건설회사를 다니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서 건축분야에 대하여 익숙했었고, 그 당시 건축사로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셨던 외가 쪽 할아버지의 조언에 큰 영향을 받아서였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에 들어가 무엇을 전공할까를 고민할 때, 할아버지는 나에게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 물으셨고 나는 다른 과목에 비하여 수학과 물리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건축(建築)에는 구조공학(構造工學, Structural Engineering)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구조공학은 과학과 수학이라는 학문을 일상에 응용하여 건축물의 뼈대인 구조물을 주로 설계하고 연구한다고 가르쳐주시면서, 실제 건축인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전문가들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어쩌면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이 될 수 있다고 강력히 추천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건축공학과(建築工學科)에 입학하게 되었고, 졸업할 때까지 줄곤 구조공학과 관련된 과목들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으며, 어느새 ‘나는 구조공학을 할 사람이야!’ 라는 자기최면(自己催眠, Autohypnose)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대학동기들은 주로 건축설계사무소와 건설회사 쪽에 관심이 많았고, 일부는 공무원와 공기업 쪽으로 진로를 잡고 있었다. 구조공학에 관심을 갖고 진로를 잡은 사람은 나 혼자였으며, 실제로 지금 내 동기들 중에 나 혼자만이 구조기술자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 많은 친구들이 구조공학을 수학적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는 골치 아픈 분야로 느꼈다. 사실 지금도 많은 건축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 건축공학과의 교육과정을 보면, 건축설계과목들과 함께 구조공학과 관련된 과목들이 숫자도 많고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높았다. 남들이 기피하는 구조공학에 대한 나만의 특별한 관심은 대학시절 좋은 학점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학창시절 장학금과 함께 많은 선후배들과 교수님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졸업 때는 공대학장상과 더불어 과수석이라는 영광도 얻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더욱 힘이 생기는 존재인 것 같다. 주위의 칭찬과 관심을 받으니, 나는 구조공학이 자신감과 함께 더욱 좋아졌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다른 학생들에 비하여 실력이 특출났다기보다는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Blue Ocean)인 구조공학분야의 학습에 더 집중하였던 결과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다른 친구들을 보면 건축설계 관련 과목들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였고, 건축공학과의 분위기도 건축설계가 대세였다. 교수님들의 숫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건축설계 관련 교수님이 다섯 분, 나머지 두 분이 구조공학 관련 교수님이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는 대학이 지금처럼 건축과의 경우, 건축학전공과 건축공학전공으로 나누어져 많은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지 않아서, 건설관리와 환경설비 쪽의 교수님은 아예 없어서 그쪽 과목은 외래강사가 강의를 맡았었다. 그러니 대부분 학생이 기피하는 구조공학의 교수님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건축설계 관련 교수님이시다 보니 당연히 건축설계가 교육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학생은 일주일 내내 설계실에서 계획설계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다들 야행성이 많아 낮에는 설계실에 보이지 않다가 저녁 무렵이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여 밤이면 설계실 가득 많은 학생들로 북적거리다가 밤새 작업을 하고서야 아침에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 당시 건축공학과 학생들에게 밤샘작업은 그냥 익숙한 일과였다. 건축설계과목은 일주일에 하루가 있었는데, 그 수업시간에서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준비한 작품을 발표하고, 담당교수님은 그것을 평가하는 크리틱(Critic)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최종작품은 과제 마지막 주에 판넬(Panel)과 모형으로 전시하여 평가받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일주일 내내 준비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매주 수업시간에 받는데, 한주 한주가 지날수록 작품은 조금씩 개선되어 나가야 되지만, 실제로 대부분 학생은 담당교수님께 많은 지적을 받고 실망한 나머지 그 동안 완성한 작품은 모두 폐기하고, 그 다음 주는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설계안으로 새롭게 시작함을 되풀이하기 일쑤였다. 결국 4주 과제라면 마지막 주에 제출되는 작품은 그 동안 담당교수님께 크리틱(Critic)을 받았던 것이 아닌, 담당교수님조차 누구작품인지 모를 정도의 새로운 작품이 전시되곤 했다. 어떻게 보면 그 동안의 과정은 헛수고로 시간낭비였다고 볼 수도 있고, 반면에 그 과정이 있었으니 좋은 최종작품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과정은 시간낭비이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관심은 구조공학에 있었으니까!’
나는 대학과정에서 건축설계에 대한 매력도 사실 느꼈지만, 건축을 배우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건축(建築)은 정답(正答)이 없다.” 였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건축의 예술적 매력은 달콤했으나, 그 가치를 평가하는 관점은 너무 주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같은 작품을 놓고도 내가 볼 때는 아름답고, 좋고, 타당하게 생각되지만, 타인이 볼 때는 아름답지 못하고, 안 좋고,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건축설계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평가에 있어서 주관적인 건축을 남에게 인정받아야 좋은 건축가(建築家, Architect)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의 건축디자인에 대한 재능을 내 자신이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때, 노력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건축계획과 디자인(Design) 감각은 학습과 노력을 통해서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 살아온 개인의 삶 속에서 학습되어지고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디자인센스(Design Sense)는 노력보다는 천부적으로 타고 낳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디자인센스(Design Sense)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며, 개인이 자라온 환경 속에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체험하고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자라온 환경은 어떠한가?’ 내가 자라온 환경을 되새겨 볼 때, 주위에서 아름다운 건축을 많이 접해 보지도 못했고, 디자인(Design)에 대한 특별한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학창시절 디자인감각이 남들에 비해 뛰어나지도 않았다. 내가 훌륭한 건축가로서 대성하기 위해서 건축디자인을 대학시절부터 시작하는 것은 디자인감각이 뛰어난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너무 출발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구조공학은 내가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이며,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구조는 정답이 있으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건축(建築)은 정답(正答)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했다. ‘건축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건축 뿐만 아니라 예술, 철학, 공학, 역사, 환경, 도시 등 많은 분야를 공부해야 하지만, 공부하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요령을 부리면서 학점을 이수할 수 있다.’는 다소 깜직하고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나만의 건축개념을 정확히 확립시키고, 그것을 목적으로 일관적 논리와 주장을 전개해 나가면서 건축적 자기표현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대학과정에서 건축설계에 투자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주일 내내 설계실에서 건축설계를 하기보다는 도서관에 있으면서 구조공학을 비롯한 관심있는 다른 과목에 시간을 더 투자하였다. 나는 설계수업이 있는 날에 임박해서야 설계실에 나타났다. 그것도 설계실에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 그리고 저녁때쯤 친구들이 설계실에 나타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설계실에서 밤을 새어 작업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학과정 중에 내가 밤을 샌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공동작품과제여서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건축적 컨셉(Concept)을 한번 잡으면 끝까지 밀어붙였다.
예를 들어 어떤 주택설계의 과제에서는 견우와 직녀라는 컨셉(Concept)을 가지고 형태를 둘로 나누고, 한쪽은 견우와 같은 남성적인 형태를 다른 한쪽은 직녀와 같은 여성적인 형태를 나름 추구하면서, 그 사이는 오작교와 같은 다리를 놓았고, 그 아래에는 은하수를 표현하는 연못을 계획하였다.
매주 설계시간의 크리틱(Critic)에서 교수님에게 많은 지적을 받았지만, 나는 매주 조금씩 변화를 주었을 뿐 다른 대다수의 학생처럼 본인의 의지와 표현자체를 굽히면서 전면 새로운 계획안을 내지는 않았다. 담당교수님이 지적을 하면 나는 내 의견을 내면서 반박하였으며, 결국 교수님의 의도대로 계획안을 바꾸지는 않았다. 왜? 나는 ‘건축(建築)은 정답(正答)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교수님은 나를 자기주장이 강하고, 말 잘 안 듣는 학생쯤으로 생각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교수님은 처음부터 최종 제출일까지 내 작품은 알고 계셨다. 그래서 A학점 이상은 받지 못했지만, B+학점은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께서 물러서지 않는 나만의 주장을 기특하게 받아주신 것이다.
한번은 담당교수님께서 나에게 내가 주장하는 컨셉(Concept)에 대해서는 더 이상 뭐라 얘기 안하겠다고 하시면서 그 대신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과 표현기법만을 보시겠다고 하신 적도 있다. 교수님이 보시기에 나의 컨셉(Concept)은 그렇다고 인정하더라도 나의 표현기법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셨다. 두 줄로 표현되어야 할 부분을 나는 한 줄로 표현했고, 세 줄로 표현해야 할 부분은 두 줄로만 표현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 나의 건축설계에 대한 재능의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대학시절을 지금 생각해 보면,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다. 그냥 남들이 관심두지 않고 공부하지 않은 구조공학 관련 과목들에 좀 더 관심을 두고 공부했을 뿐이다.
‘왜? 나는 구조공학(構造工學, Structural Engineering)을 할 사람이었으니까!’
대학시절 설계실보다는 도서관을 주로 찾으니 거기서 졸업을 얼마 안 남기고 취업준비 중인 선배들을 자주 만났고, 그러다보니 친해져서 그 당시 나는 동기들보다 군대를 다녀온 3~4년 예비역 선배들과 더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많은 도움과 조언을 받았는데, 어떤 때는 건축설계모형을 만들면서 쩔쩔매는 나를 보고, 예비역 선배들이 대신 모형을 만들어 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일이였다.
‘후배가 선배를 돕지 못할망정 도움을 받았으니…….’
나중에 예비역 선배들이 나를 유난히 잘 챙겨주고 도와준 이유를 알았다. 인사를 잘 해서란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후배들을 만나면, 대부분 무안하게 인사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데, 난 꼬박꼬박 인사를 해서 좋았단다.
한 사람의 기본적인 에티켓(Etiqette)과 사소한 작은 행동이 남들에게 그 사람의 전체를 평가받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것을 직업(職業)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기란 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 또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지, 소질은 있는지는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본인이 좋아하는 일, 더 나아가 재능이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자기가 지금 선택한 일을 좋아해 주는 것도 한 가지 차선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많은 후배들을 보면, 직업선택에 있어서 지금 당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 또는 비젼(Vision)이 있다는 직업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비젼(Vision)이 있다는 직업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오늘의 좋은 직종이 미래에는 열약한 직종이 될 수 있고, 오늘의 힘든 직종이 미래에는 남들에게 촉망받는 직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외부로 보이는 비젼(Vision)을 좇으며 살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적성(適性, Aptitude)과 기호(嗜好, Liking)에 상관없이 높은 연봉만을 쫒아 직업을 선택하거나 남들이 모두 가고 싶어 한다고 대기업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비젼(Vision)은 외부환경(外部環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환경의 비젼(Vision)을 좇아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나중에 혹시 실패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나 좋아하는 일에 열정(熱情)을 쏟아 산다면, 나중에 혹시 실패하더라도 미련과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모든 사람이 비젼(Vision)이 없다고 말하는 분야도 그 분야의 1등은 성공한다.
또한 실패에 대하여 매사에 남 탓, 환경 탓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실패하면 역량이 부족한 자기 탓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대학시절 ‘나는 구조공학(構造工學, Structural Engineering)을 할 사람이야!’ 라는 자기최면(自己催眠, Autohypnose)에 빠져 구조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당시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Blue Ocean)인 구조공학을 나름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학교성적이 좋았으며 남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그러다보니 구조공학이 더 좋아졌고, 지금은 이 ‘구조기술자’ 직업이 나의 천직(天職)이라 생각하며 사명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살고 있다.
“ 후배들이여!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
“ 좋아하는 일을 찾기 어렵다면,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당신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기최면을 스스로 걸어 보심은 어떨지?”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그들이 배출한 7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하였다.
“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창조적 성과를 이룰 수 있을까요? ”
이에 그들 대부분의 답변은 비슷하였는데, 그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 Do what you love.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
당신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 ‘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자다가도 좋아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진짜 좋아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리고 역으로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을 그렇게 좋아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행복(幸福)과 성공(成功)이 함께 따라 올 것이다.